첫사랑 같은, 허수경의 첫 시집
1980년대 말. 그때 우리들은 가난했지요. 가난하고 지난했지요. 정치는 어두웠고 청년들은 잡혀갔고 글을 쓰는 것도, 사는 것도 검열과 단속의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 탄생된 저의 첫 시집,『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저의 뿌리, 저의 오래된 얼굴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삶이 지난하다는 걸 모르고 열정만 가득하던 시절, 말의 어려움과 지난함과 지극한 가벼움과 가벼움 뒤에 서 있는 사랑과 삶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만 젊어서 불렀던 노래들이 그 시집 안에는 담겨 있습니다.(「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크고 깊은 고통과 몸부림”이 잉태한 “저주와 은총”의 시
1986년 실천문학의 주간으로 있던 소설가 송기원은 미발표작이 대부분인 한 시집 원고를 앞에 두고 말한다.
“맙소사, …(중략)… 그녀의 시는 이미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어서 이제 막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과일들이 자아내는 어떤 조바심의 분위기가, 그리고 그런 조바심이 자아내는 안타깝고도 애절한 분위기가 전편에 질펀한 것이 아니랴. …(중략)… 누군가로부터 저주와 은총을 함께 받은 시인이다.”(해설 「저주와 은총의 사랑」에서)
허수경의 첫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1988년 초판 간행 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변함없이 “크고 넉넉한 사랑”으로 이 수상한 시절을 함께 살고 있다. 2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안상수 선생의 디자인으로 다시 만나는 개정판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토실한 햇살이 몸을 섞고” “힘들수록 팽팽하게 당겨지는”(「남강시편 4」) 진주 남강의 “오직 그리운 눈매 유순한 눈매”(「남강시편 3」)를 꼭 닮아 있다.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펴낸 후, 독일로 건너간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소설을, 산문을 쓰고 또 시로 가기 위해 머나먼 이국에서 18년째 다른 생을 살고 있다. 시도 세월을 타게 마련이라, 오래전 시인이 부려놓았던 말들이, 불현듯 시인을 닮아 있거나 혹은 시인이 자신의 시로 늙어가 하나의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생을 허수경 시집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특히나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시인과의 관계망을 넘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련의 시대성과 핍진한 민중의 삶이 등치를 이루어 반복되는 데까지 그 의미가 확장된다. “싸움 많아 고된 땅”에서 오직 “살아 있음으로만 증거할”(「남강시편 2」) 뿐인 질곡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 단금한 언어로 지어진 80여 편의 시는, 작가의 고향인 ‘진주’산(産) 시어로 주물되어 “영영 돌아오지 않는 1950년”(「젓갈 달이기」) - “불혹을 넘긴 해방산천”(「원폭수첩 7」) - “무전기 공화국”(「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3」) 등과 같은 시공간을 넘나들다가 “남강”에 이르러서야 열에 들뜬 언어를 장구한 세월의 물줄기에 풀어놓음으로써 역사성과 민중성이 교차하는 격자무늬의 옹골진 시편들이 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너른 강에 불씨/재우는 남녘 가시나”(「진주 저물녘」)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적 현실이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전쟁을 겪어 불행한 세대와 전쟁을 겪지 않아 불행한 세대”(「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가 “같은 지붕 아래” 살아야 하는 불편한 동거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시를 쓸 만한”(「진주초군」) “즐거운 시련이 많은 땅”(「진주초군」)이 그러하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가을로 익어가는 가난한 눈물이/무와 함께 씹히는 아린 내 나라”(「대평 무밭」)를 통감하며 “우리에게 유일하게 채무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조선의 산천”(「조선식 회상5」)을 운명적으로 끌어안는다.
“떠난 사람의 자리가 썩는”(「탈상」) 시대의 아픔을 통해 “붉은 고추”(「탈상」)가 익듯이, 여전히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의 명제가 유효한 시대에 허수경의 시편들은 ‘수상한 시대’의 독법으로 다시 읽히기에 충분하다.
도서명 |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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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허수경 |
출판사 | 실천문학사 |
출간일 |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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