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차실》은 옛 진주목 중심의 차문화 공간을 소개한 책이다. 중요한 역사성을 가진 사찰, 고택, 누각부터 일상생활을 그대로 누리는 차실, 일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찻집 명소까지 다양한 공간을 소개한다. 이 책은 점점 잊혀가는 차문화의 역사공간을 현재형으로 만들고, 비움과 드러냄, 조화와 긴장의 접점이 만나는 새로운 차실 공간의 현대적 지향점을 여러 각도에서 찾기 위해 노력했다. 직접 공간을 찾아가 볼 수 있도록 각 차실의 소개 끝에는 주소를 표기했고 목차 앞에 차실을 표시한 지도를 첨부해 대략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역사 속 빛나는 차실부터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차실까지
옛 진주목 중심 차문화 공간 톺아보기
사람은 저마다 크든 작든 간에 공간을 자기화하려는 특징이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는 공간이 바로 또 다른 자기화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차실은 공간의 자기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차인이 추구하는 정신세계와 심미적 안목은 차실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는 최적의 차문화 공간은 어떠한 곳이어야 할까.
저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솔사다. 다솔사는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차문화 운동사에도 큰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다솔사에 주석했던 학승이자 차인, 독립운동가였던 효당 최범술은 한국적인 차 이론과 생활에 대해 체계를 세웠다. 비봉루, 하천재, 용호정, 봉일암 등은 역사성과 차 문화 운동의 발상지로서 의미를 가졌고, 죽영당, 두은재, 정명당, 죽향, 죽로지실 등은 다솔사에서 기원한 한국 차문화를 계승하는 현대적인 차문화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바람 부는 차실》의 의미는 진주를 중심으로한 주변 지역의 잊혀져가는 차 문화 공간을 일반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차문화의 역사공간을 현재형으로 만들고, 새로운 차실 공간의 현대적 지향점을 여러 각도에서 찾는 것이다.
차도무문(茶道無門)… 효당 최범술과 진주의 차문화 공간들
효당 최범술은 초의선사의 차선일여 정신을 대중적인 차살림 운동으로 전환시켰고, 전통적인 차생활의 고유성을 계승 발전시켜 한국적인 차 이론과 생활을 현대화하고자 노력했다. 그 중심에 다솔사가 있으며 은초 정명수가 건립한 비봉루, 아인 박종한의 하천재가 있다. 이 세 공간은 한국의 차문화를 중흥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1969년 10월, 효당 최범술과 은초 정명수, 태정 김창문, 아인 박종한 등이 전국 최초의 차회인 진주차례회를 만드는데 이는 현대 차문화 단체의 효시다. 그 중심 공간에 효당 최범술이 주석했던 다솔사와 진주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했던 은초 정명수가 건립한 비봉루가 있다. 하천재는 1938년 건립된 재실이다. 아인 박종한 가문의 재실인 이곳은 1960년대 중반부터 진주를 비롯한 전국 차인들의 모임이 잦았고, 1987년도에 ‘하천다숙’으로 이름을 바꾸고 차도교육실로 개방했다. 새로운 재실 양식을 보여주었다는 건축적인 우수성 외에도 차도의 산실로서 큰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그리고 평생 독립을 위해 살았으며 효당과 가까이 지냈던 황남 문영빈의 직하재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곳이다.
비움과 드러냄, 조화와 긴장의 공간 … 오늘날의 개인 차실
이 책에 실린 공간은 옛 공간만이 아니다. 역사성을 가진 공간뿐만 아니라 아파트 거실부터 시골 농가까지 내적 단출함을 가진 개인 차실도 여러 곳 소개하고 있다. 내밀한 개인의 공간이긴 하나 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다. 생활이 이뤄지지 않는 차문화 공간은 생명력 없는 박제물일 뿐임을 저자는 정확하게 짚고 있다.
오늘날의 개인 차실이 대부분 보여주기 식의 외적 치장에 힘을 쏟고 있다는 뼈아픈 반성에서 보자면 이 책에 소개된 공간들은 차 공간으로 모범이 될 만하다. 허물어져 가는 도시 인근의 농가를 활용한 별서차실인 죽영당은 농가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점, 선, 면, 입체 공간의 특징을 살렸다. 장독, 축담의 돌, 가지런히 쌓아둔 장작, 마당의 이끼까지도 점점으로 이어져 일체화되는 곳이다. 맑은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지리산을 병풍처럼 두른 두은재는 지리와 공간이 조화로운 곳이다. 조각보를 바느질하는 작업실이자 차실인 정명당은 주인의 부지런한 손길이 있으면 공간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모범처럼 보여주는 곳이다. 아파트 거주 인구가 전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현재 눈여겨 봐야할 곳은 아파트 거실에 ‘조화와 검박’의 미덕을 살린 원명당이다.
저자가 무게를 두고 눈여겨본 차문화 공간 대부분은 빈방 하나 따로 만들어 둔 ‘갇힌 차실’이 아니라, 텅하니 열려 있는 ‘생활 차실’이다. 차와 함께 일상의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바람 부는 차실》에 그대로 녹아있다.
책을 펴내며 4
1. 효당의 위대한 차 바람이 부는 곳 - 다솔사 12
2. 예술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문화 사랑방 - 비봉루 28
3. 아인의 삶을 되새기는 차문화의 성지 - 하천재 42
4. 의인과 차인이 만나는 공간 - 직하재 58
5. 아름다운 설화로 피어난 옛 정원 - 용호지의 무산십이봉과 용호정 78
6. 죽로 한 잔으로 승이 되는 - 봉일암 92
7. 시를 읽고, 차를 마시는 종부의 마음 - 박 진사 고가 108
8. 정갈한 고고적적, 재실 차실 - 봉은재 126
9. 차가 있는 풍경채 - 새벼리 시조문학관 142
10. 이끼 낀 뜰에 대 그림자 드리운 별서차실 - 죽영당 154
11. 책과 차의 둥지 - 진주문고 선강실과 하동 화심리 두은재 172
12. 한 자락 매다 보면 인생은 꽃밭 - 정명당 188
13. 구애 받지 않는 천선의 놀이터 - 향운다운 농원차실 206
14. 일상의 여유와 행복 … 아파트형 생활 차실 - 원명당 222
15. 댓잎 서걱대는 소리가 향기로 피어나는 곳 - 죽향 236
16. 한줄기 바람에 구름을 벗어난 달이 되는 곳 - 조태연가 죽로지실 248